▲ '맥간(麥稈)공예'로 널리 알려진 공예가 이상수씨가 최근 새롭게 제작한 '금박' 공예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금박의 화려함을 한 번 느껴보시죠."

공예가 이상수(52)씨에겐 항상 수식어가 뒤따른다. 바로 '맥간공예의 창시자'란 타이틀.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공예 재료 연구에 몰두해 경북 청도에서 보릿대를 발견, 보릿대를 펴서 문양을 만드는 맥간공예 기술로 실용신안 특허 5개를 따냈다. 그후 맥간공예 보급에 힘써 이제 그를 따르는 문하생도 수백명에 이른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보릿대를 대신해 금으로 만든 '금박공예'를 들고 나왔다. 이씨가 금박을 이용해 만든 작품들은 펜던트, 팔찌, 보석함, 찬합, 쟁반 등 대부분 실생활에서 쓰이는 것들인데, 작품과 생활공예의 경계를 넘나들며 하나하나 그 화려한 면모를 자랑한다.

이씨는 맥간을 이용해 작은 소품들을 만들어보다 크기가 작을바엔 아예 고부가 가치 상품을 만드는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보릿대로도 보석함이나 목걸이, 여타 장신구들을 만들 수 있지만 들어가는 공임에 비해 사람들이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더라구요. 그리고 크기가 작아지면 맥간공예가 가지고 있는 입체성이나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화려한 색감들을 제대로 살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금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금박을 이용해 시제품을 몇개 만들어서 일반인들한테 보여줬더니 반응이 좋더라구요. 맥간으로 만든 것보다 가격차가 3~4배 나는데도 선뜻 구입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앞으로 좀더 연구하며 지켜볼 생각입니다."

  그는 현재 금박공예 제작법에 대한 특허를 출원해놓은 상태다. 언뜻 보기에는 별 기술 없이 그냥 금박을 오려서 제품에 붙이면 될 것 같지만 여기에는 그만의 비법이 담겨있다. "금박이라는 게 생각보다 무지 얇아요. 1㎜의 1천분의 1인 미크론 단위까지 내려가거든요. 손으로 잘못 누르면 금세 구겨지고, 지문이라도 묻으면 더이상 재료로 쓸 수 없게 되죠. 금박에 손으로 아주 얇은 결을 내는 게 사실 비법이라면 비법인데, 이렇게 하면 음영효과를 낼 수 있을뿐 아니라 금박을 제품에 붙일 때도 밀착성을 높여주죠."

이씨가 사용하는 금박은 대부분 일본 가나자와현에서 수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금박으로 만든 제품들을 일본에 역 수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금박 제조기술은 아직까진 일본이 세계최고예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예제작 수준은 결코 일본에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만간 일본에 금박제품을 수출해 한국의 공예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꼭 증명해보이겠습니다."  /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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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Diary 2010/07/25 21:58
연일 음주에 찬데서 잤더니.

결국 탈났네.

나는 20대가 아니야~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 기노철화백이 수원화성박물관을 방문, 자신이 20여 년 전에 그린 '화성전도'를 살펴보고 있다.

"아! 이 그림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지난 13일 수원화성박물관 특별 기획전으로 마련된 '그림, 화성을 품다'展에서 한 노화백이 대형 그림앞에 서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금세 그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華城(水原城)全圖'라고 이름 붙여진 이 그림은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 10폭짜리 병풍에 그려진 이 대작은 200여년전 화성의 모습을 복원한 것으로 그림을 바라보며 탄식하던 이는 바로 이 그림을 그린 주인공인 기노철(74) 화백.

그림 왼쪽에는 그림을 완성한 시기인 辛未(1991년) 孟夏(초여름)라고 적혀있고 바로 옆에 화백의 낙관이 선명하게 들어있어 그림을 그린 이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기구한 사연이 있다.

"이 그림은 한 사업가에게 부탁받아 그린거예요. 화성에 대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 화성 일대를 돌며 몇달을 취재했죠. 난 화성이 원래 축조됐을때 당시 모습을 그리고 싶었기에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고증을 받았어요. 제가 예전 투시도를 배워 나름대로 건축물을 잘 그렸죠. 이 그림은 산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화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겁니다."

기노철 화백은 화성 주변에 살았던 노인들의 구술과 답사를 통한 거리측정, 그리고 상상력을 더해 예전 화성 모습을 완벽하게 복원했다. 그림속 남공심돈(팔달문 옆에 있다가 현재는 사라짐), 성곽안의 초가집들과 성곽 밖의 평야, 비석이 많이 있던 마을 등은 최근 발견된 사진과 자료 등을 통해 그 실체가 충분히 입증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공들여 그린 그림을 구입한 사업가는 기업 홍보를 위해 그림을 실컷 전시한 후 작품 대금 지불을 차일피일 미루다 그만 중국으로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지금이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너무 화가 나 죽고싶은 심정이었어요. 가족들한테도 말도 못하고. 몇달을 혼자 속앓이하다 결국은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죠. 그렇게 20년이 흘렀는데, 어느날 수원화성박물관에 내 그림이 걸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죠."

이 그림은 몇 사람의 손을 거쳐 몇 해 전 경기대학교 박물관에서 구입, 보관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경기대 박물관의 소장품과 수원지역 작가 15명이 참여해 수원 화성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제라도 그림을 다시 보게 돼 다행이에요. 앞으로도 박물관에서 그림 보관을 잘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화성의 원래 모습에 대해 알았으면 합니다." 대작을 남긴 화백은 이 말을 남기고 쓸쓸히 전시장을 나섰다. / 김선회기자 ksh@kyeoni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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