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노철화백이 수원화성박물관을 방문, 자신이 20여 년 전에 그린 '화성전도'를 살펴보고 있다.

"아! 이 그림을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지난 13일 수원화성박물관 특별 기획전으로 마련된 '그림, 화성을 품다'展에서 한 노화백이 대형 그림앞에 서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금세 그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華城(水原城)全圖'라고 이름 붙여진 이 그림은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 10폭짜리 병풍에 그려진 이 대작은 200여년전 화성의 모습을 복원한 것으로 그림을 바라보며 탄식하던 이는 바로 이 그림을 그린 주인공인 기노철(74) 화백.

그림 왼쪽에는 그림을 완성한 시기인 辛未(1991년) 孟夏(초여름)라고 적혀있고 바로 옆에 화백의 낙관이 선명하게 들어있어 그림을 그린 이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기구한 사연이 있다.

"이 그림은 한 사업가에게 부탁받아 그린거예요. 화성에 대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 화성 일대를 돌며 몇달을 취재했죠. 난 화성이 원래 축조됐을때 당시 모습을 그리고 싶었기에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고증을 받았어요. 제가 예전 투시도를 배워 나름대로 건축물을 잘 그렸죠. 이 그림은 산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화성을 생생하게 묘사한 겁니다."

기노철 화백은 화성 주변에 살았던 노인들의 구술과 답사를 통한 거리측정, 그리고 상상력을 더해 예전 화성 모습을 완벽하게 복원했다. 그림속 남공심돈(팔달문 옆에 있다가 현재는 사라짐), 성곽안의 초가집들과 성곽 밖의 평야, 비석이 많이 있던 마을 등은 최근 발견된 사진과 자료 등을 통해 그 실체가 충분히 입증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공들여 그린 그림을 구입한 사업가는 기업 홍보를 위해 그림을 실컷 전시한 후 작품 대금 지불을 차일피일 미루다 그만 중국으로 자취를 감춰버리고 말았다.

"지금이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너무 화가 나 죽고싶은 심정이었어요. 가족들한테도 말도 못하고. 몇달을 혼자 속앓이하다 결국은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죠. 그렇게 20년이 흘렀는데, 어느날 수원화성박물관에 내 그림이 걸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죠."

이 그림은 몇 사람의 손을 거쳐 몇 해 전 경기대학교 박물관에서 구입, 보관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경기대 박물관의 소장품과 수원지역 작가 15명이 참여해 수원 화성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제라도 그림을 다시 보게 돼 다행이에요. 앞으로도 박물관에서 그림 보관을 잘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화성의 원래 모습에 대해 알았으면 합니다." 대작을 남긴 화백은 이 말을 남기고 쓸쓸히 전시장을 나섰다. / 김선회기자 ksh@kyeoni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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