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저는 문화적 가치, 그 중에서도 글자에 있다고 믿습니다."
한글이 갖고 있는 음과 뜻을 이용해 독특한 문자 조형세계를 이뤄낸 심응섭(사진) 순천향대 명예교수를 충남 예산군 삽교읍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효행'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원래 효행(孝行)은 '어버이를 잘 섬기는 행실'이라는 뜻의 한자지만, 그가 한글로 쓴 효행은 마치 갓을 쓴 선비 옆에 강아지가 꼬리를 치며 졸졸 따라가고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부모를 섬기는 마음'이라고 적혀 있다. 아마도 '효행'이란 주인에게 충실한 강아지의 행동과도 같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리라.
효행 외에도 그의 작업실 안팎에는 '형통', '배움', '스승', '행복', '웃음' 등의 글자로 만든 캘리그래피 작품이 가득하다. 심 교수가 쓴 글자를 보고 있노라면 그 단어가 품고 있는 뜻이 자연스럽게 연상돼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런데 그의 전공은 뜻밖에도 행정학이었다. 대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20여년간 행정학만을 가르친 후 정년퇴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떻게 이런 작품들을 만들 수 있었을까.
"서예와의 인연은 군 시절에 비로소 시작됐다고 봐야죠. 당시 전라도 광주에서 복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외출을 나갔다가 우연히 한옥 대청마루에서 수염을 허옇게 기른 노인이 모포를 깔아 놓고 대붓으로 글씨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한눈에 봐도 그분이 서예의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분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 글씨를 배울 수 없겠느냐고 여쭤봤죠. 하지만 그 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그 뒤로 세 번을 더 찾아가 똑같은 질문을 한 뒤에야 노인은 겨우 입을 뗐다. "군인이 글씨 배울 수 있당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백발 노인은 호남 서맥을 계승한 송곡(松谷) 안규동 선생이었다. "선생님은 처음엔 그저 군인이 호기심으로 물어본 것이라 여겨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던 것이었죠. 하지만 네 번씩이나 자신을 찾아온 젊은이의 진정성에 마음을 열고 저를 제자로 받아주신 겁니다."
심 교수는 군 시절 부대 관계자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 허락을 받아 안규동 선생에게 서예수업을 받았으며, 제대 이후에도 다시 그를 찾아가 15년간 사제지간의 인연을 이어나가게 된다. 스승에게 해서, 행서, 초서 등 한자의 모든 서체를 배운 그는 대학 4학년 때 문득 한글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글이 우수한 문자라고 말은 하면서 정작 서예인들은 한글 작품을 등한시했어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 저는 청계천 근처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한글필첩을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마음에 드는 글씨체를 발견하면 연필로 각을 그려가면서 그것을 따라했어요. 이 결과 각종 전시회에서 한글 작품으로 수상도 하게 되고 자신감을 얻게 됐죠."
그는 1975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1999년 한국인 최초로 서예의 종주국인 중국에서 한글작품으로 전시회를 가졌는데 이것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한글 하면 주로 궁체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 글씨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외국인들이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베이징에서의 호평 이후 일본 도쿄, 독일 베를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도 한글작품으로만 전시했는데, 이 모든 것이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시도한 것입니다."
한글날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심 교수는 국회의원들 금배지에 왜 '국(國)'자가 한자로 들어가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해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분들께서 왜 한글 대신 꼭 한자를 써야만 할까요. 정치인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어찌 따르겠습니까? 한글사랑에 평생을 바친 주시경 선생께서는 '나라를 보전하는 자는 자국의 글과 말을 먼저 닦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고쳐나가야 한글이 계승되고 발전할 수 있는 겁니다. 저는 앞으로도 '모국어 사랑이 곧 나라사랑'이라는 일념으로 우리 한글을 세계 문자예술의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고 싶습니다." /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