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지상에 오르내리는 부패와 비리의 현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 '룸살롱'.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소통코드로 강준만 교수가 택한 키워드다.

1인당 최소 수십만 원이 드는 '룸살롱 접대'를 관행으로 인정하는 것은 한국의 독특한 문화다. 그렇다면 룸살롱의 시작은 언제로 봐야 할까.

강 교수는 룸살롱의 전신인 '요정'이 전성시대를 구가한 해방정국을 그 발원지로 보고, 마침내 위세가 절정에 달한 현재까지 룸살롱 발달의 과정과 변모의 순간을 생생하게 전한다.

1947년 서울에만 3천여개 이상의 요정이 있었으니, 요릿집과 기생집이 보통사람들의 화제가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요릿집과 기생집 출입은 정치 지도자들에서부터 경찰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만연된 관행이었다. 오죽하면 1946년 12월 중순 수도경찰청이 "경찰관들의 요정 출입으로 경찰 행정에 불민(不敏)한 점이 적지 않으므로 경찰의 각종 요정 출입을 일절 엄금할 것"을 지시했겠는가. 그러나 위에서부터 늘 요릿집과 기생집을 출입하는데, 그것이 근절될 리는 없었다.

                      ■룸살롱 공화국┃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88쪽, 1만2천원.

 1970년대부터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룸살롱(또는 유사 룸살롱)과 이에 따른 '호스티스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룸살롱이 아닌 업소들도 룸살롱 흉내를 내기 마련인 바, 오늘날까지도 유사 룸살롱으로 인해 룸살롱의 엄격한 정의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룸살롱 '원맨밴드' 경력 33년인 A씨에 따르면, 국내에 룸살롱이 들어선 것은 1970년대 중반이며, 1세대 룸살롱은 서울 퇴계로 주변에 모여 있었다. 이후 이태원 근처에 '길싸롱', '밤길' 같은 룸살롱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 교수는 "한국은 명실상부한 '접대 공화국'이다. 주고받는 접대 속에 인정이 싹트고 명랑사회가 구현될까? 오히려 부정부패가 꽃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는 "룸살롱의 물리적 본질은 '칸막이'이며, 칸막이는 패거리 만들기의 필수 요소로, 패거리주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이다. 그런 의미에서 룸살롱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인 셈이다"라고 밝혔다. /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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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은 '정조(正祖)의 도시'다. 비극적으로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가 간직했던 개혁의 꿈을 이룰 무대로 정조가 선택한 땅 수원. 정조는 여기서 어떤 세상을 열고 싶었던 것일까? '왕이 만든 시장'에 그 답이 담겨있다. 여기서 '왕이 만든 시장'은 수원 팔달문시장을, '왕'은 정조를 가리킨다.

정조는 부국강병의 근원이 상공업에 있다고 봤다. 그러나 한양의 상인들은 이미 기득권과 손잡고 금난전권을 비롯한 막대한 이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아예 무대를 옮기자." 정조는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올라오는 길목인 수원에 신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그런데 수원은 물이 부족했다.

정조는 수원 곳곳에 버드나무를 심어 제방을 튼튼하게 하고, 물길을 확충해 저수지와 농경지를 만들었다. 이에 수원은 '유경(柳京)'이라고도 불렸다. '버드나무가 많은 수도'라는 뜻이다. 실제로 팔달문시장 앞을 흐르는 수원천은 버드나무가 하도 많아 '버드내'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왕이 만든 시장┃브랜드스토리, 멋진세상, 321쪽, 1만3천원.

 수원에 사회기반시설을 조성한 정조는 수원성(華城)을 짓고 그 남문(南門)인 팔달문(八達門)에 시장을 열었다. 시장을 연 정조는 전국의 대상인들을 불러 모았다. 이때 모인 상인들은 정조처럼 부국강병의 근본이 상공업에 있다고 보고 일찍이 상업에 투신한 선비상인들이었다. 이들의 뿌리가 원래 선비이다 보니 수원상인들은 '이(利)'보다는 '의(義)'를 따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중시하는 기풍이 조성됐다. 일제강점기에 교육사업에 헌신하는 상인들이 특히 많았던 사실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개성상인은 송상, 서울상인은 경상으로 불리는 반면 수원상인은 '깍쟁이'로 불리곤 한다. 수원 상인으로선 억울할 법하다. 옛날에는 '가게'를 '가가'로, 상인을 '가가쟁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변해 '깍쟁이'가 된 것이다. 즉, 수원에 그만큼 가게가 많았다는 뜻이다. 수원상인은 결코 깍쟁이가 아니다. 정조가 사랑한 도시 유경(柳京)의 상인이니 '유상(柳商)'이라 불러야만 마땅하다.

사회가 변하면서 팔달문 시장도 예전에 비해 많이 퇴색했지만 수원 유상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이책은 수원의 잃어버린 이름, '유경'을 되살리고자 진행한 결과물이다.

책의 전반부는 정조가 팔달문시장을 열기까지 벌어졌던 다양한 사건들을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수원 유상의 정신을 이어가며 팔달문 시장을 지키고 있는 통닭집의 라이벌 '진미통닭과 용성통닭', 곱창으로 유명한 '입주집', 추어탕의 대박신화 '화홍추어탕' 등 수원 유상의 정신을 이어가며 팔달문 시장을 지키고 있는 대표상인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 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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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 제플린┃키스 섀드윅, 한종현 역, 을유문화사, 528쪽, 2만5천원.

[경인일보=김선회기자]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록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그룹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에 관한 평전이 출간됐다.

레드 제플린은 같은 영국계 록그룹 딥퍼플 (Deep Purple)과 함께 록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에게는 신화적 존재로 남아있으며, 현재까지도 이들이 남긴 'Stairway To Heaven' , 'rock & roll' 같은 명곡들은 꼭 카피(copy)해야만 하는 필수 대상으로 여겨질 정도다.

레드 제플린은 1960년대 영국에서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Jimmy Page)의 야심찬 계획에 의해 1968년 여름에 결성됐다.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보컬),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베이스), 존 본햄(John Bonham·드럼)으로 조직된 밴드는 약 1년 만에 록계의 거물로 부상했다.

이들이 선보인 음악은 당시 무척 충격적이었고, 화려한 무대의상이나 바이올린 활로 기타를 치는 전위적인 연주기법 또한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80년 드러머 존 본햄의 죽음으로 밴드가 해체될 때까지 그들은 최정상의 자리를 지켰으며, 해체된 이후 재결성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아 팬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한때 프로 뮤지션이기도 했던 저자 키스 섀드윅(Keith Shadwick)은 영국의 음악 평론가로, 레드 제플린에 관련 서적과 음악지를 비롯한 각종 잡지, 시청각 자료는 물론 직접 관련 인물과 인터뷰까지 시도하며 확보한 정보를 토대로 이 책을 썼다. 많은 사건과 곡절로 이어진 그들의 연대기를 기본 틀로 삼으면서, 정규 앨범뿐만 아니라 비정규 음반으로 나온 연주, 동영상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남긴 자료에 대한 논평을 거르지 않았다. 그들의 음악 하나하나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재킷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     
 
인지,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기 위해 겪은 시행착오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서술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당시 음악계 환경과 다른 뮤지션들과의 교섭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 이 책을 통해 1960년대 말 이후 10여 년의 음악계 흐름까지 가늠할 수 있게 했다.

이 책에는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100여 컷의 사진과 함께, 그들의 디스코그래피, 공연 일정 등도 수록했다. 록의 역사에서 레드 제플린이 차지하는 위상에 비해 국내에 소개된 관련 도서는 화보 위주의 자료집 성격의 것이 전부였다. 이 책은 단순한 화보집이나 자료집이 아니라 그들 음악 하나하나에 대한 심층적 논평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록 애호가들에게 반가운 책이 될 것이다.

 




크게보면 중국의 사상과 역사를 아우르는 책들이다. 

나보고 무인도 갈때 단 한권(질)만 선택하라면 사마천의 사기를 선택할 것이며,
1+1 이라면 사기+주역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불났을때 단 한권만 집으라면 당근 주역을 선택한다.

무인도의 특수성상 재미가 있어야 하므로 사기를 택한 것이고,

무인도가 아닌 상황에서 앞으로 살아갈날이 많다면 당연히 주역을 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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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는 저에게 있어 사회생활의 규범이고, 장자(莊子)는 마음의 안식처, 그리고 사기(史記)는 제 삶과 일치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양대 ERICA 캠퍼스 중국학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인호(52) 교수는 25년째 사마천의 '사기'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중국학자다. 그는 그동안 '사기 본기', '사기 열전', '사기 이야기' 등 다양한 사기 관련 서적외에 '논어30구', '논어, 사람의 길', '장자30구', '장자,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화' 등을 펴낸바 있다. 결국 크게 보면 그의 학문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사기, 논어, 장자인 셈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일반인들을 위해 장자를 쉽게 풀어쓴 '장자에게 배우는 행복한 인생의 조건(도서출판 새빛)'을 출간했다. 이 책은 장자 원문을 그대로 해석해 놓은 책이 아니라 장자에 나오는 핵심 구절만을 뽑아 저자의 의견을 달고, 바쁜 현대인들이 지침으로 활용할 수있게 만든 인문교양서다. 2천300여년전의 '장자'가 과연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흔히 당연한 말을 '공자님 말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잡곡밥에 청국장이 몸에 좋다한들 매일 먹으면 싫증나듯이 금언이나 명언, 속담, 격언 등 좋은 말씀도 자꾸 보고 들으면 식상하지요. 이 책은 이런 공자님 말씀에 질리신 분들을 위한 책입니다."

    


 
 이 교수는 장자에게 배우는 행복한 인생의 조건으로 '절욕', '허심', '여유', '자족', '유희' 등을 꼽았다. "장자는 금언, 명언, 속담, 격언을 모두 뒤집는 역설과 유머와 신랄함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급할수록 여유를 가져야 하며, 재물은 물론 자신의 마음을 비울수록 더 행복함을 느낀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또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므로 자연과 화해하고 공존하겠다는 마음, 효율과 시간을 다투는 생활이 당장은 우리의 생활을 부유하게 해줄지언정 결국은 우리 모두를 황폐하게 만든다는 위기감 정도만 느껴도 장자의 가치를 충분히 느꼈다고 볼 수있습니다."

그는 현대인에게 자주 발생하는 우울증을 치유하고, 정신 건강을 보장하는 데에도 당장 장자만한 책이 없다고 했다. "장자에는 중국 고전 그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기괴한 모습을 가진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괴질로 흉하게 변해버린 기인이나, 다리가 하나밖에 없다거나 허리가 심하게 굽은 노인장도 나옵니다. 쉽게 말해 전형적인 장애인이지요. 그러나 이들이 육체적으로 불편할지는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인격체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결국 행복이란 마음 먹기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쩔 수 없을 때에는 자신앞에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라는 것, 그것도 장자의 가르침 입니다." /김선회기자 ksh@kyeoni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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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에게 밥 대신 웬 학문이냐구요?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밥이나 집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회복이기 때문입니다."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는 최준영(44)씨가 6년전부터 성프란시스대학,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 등에서 노숙인 등을 상대로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담은 책이다.

최씨가 노숙인들에게 강의를 하게 된 것은 그의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고등학교 과정을 야학에서 마치고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들어갔다. 이후 야학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시절에는 본인 스스로 야학교사로 활동했다. 대학졸업 후에는 수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신문사에 첫 발을 내디뎠지만 1년만에 그만두고, 신춘문예에 도전해 덜컥 당선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후 연달아 사업에 실패하는 등 삶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그러다 성공회에 있는 한 신부에게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를 마련해 보자는 뜻밖의 제의를 받는다.

"2005년 광화문에 있는 성공회 대성당에서 다른 두 분의 선생님들과 함께 인문학 강의를 시작했어요. 과목은 철학, 글쓰기, 예술사였는데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죠.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가 잘 될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수강생 20여명 모집에 46명이나 지원한 거예요. 그제서야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노숙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됐지요."

이 책에는 교도소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친구와의 인연, 한 부모 여성 가장들의 눈물어린 이야기, 하늘나라로 간 노숙인의 상주 역할을 했던 이야기 등 인간적이고 애잔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와 노숙인들의 변화된 모습들이 잘 녹아들어있다.

"저의 첫 수업을 들었던 노숙인들이 한참 후에 저를 찾아왔어요. 그분들이 수업을 들을때만해도 눈은 퀭하고 대개 창백한 얼굴이었죠. 그런데 다시 만난 그들의 얼굴은 모두 구릿빛으로 변해 있었고, 눈에도 총기가 생긴 거예요. 어떤 이는 트럭운전사가 돼 있었다 어떤 이들은 공사판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재기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식사대접을 하며 '선생님,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하고 감사해 했죠. 그 만남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그 빗속에서 저는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이게 인문학의 힘이구나'하고 말이죠."

그는 이렇듯 노숙인들을 만나고 그들을 가르치면서 가슴 뭉클한 사연들을 많이 접했다고 했다. "노숙인들은 집이 없는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옆에 '사람'이 없다는게 더 큰 문제입니다. 제가 경험해 본 결과, 인문학은 노숙인들의 인간관계 회복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들에게 밥 한끼나 술을 사주는 것보다 책 한권 선물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깨달았습니다."/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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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김선회기자]"많은 사람들이 풍수(風水)란 좋은 집터 혹은 좋은 조상 묏자리를 찾아 쓰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그것은 풍수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풍수관련 서적이 한권 출간됐다. 우석대 김두규(50·사진) 교수가 5년에 걸쳐 총 11종의 판본을 취합, 역주 작업을 한 '감룡경·의룡경'은 원래 조선시대 풍수학 교과서로 쓰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풍수서가 묏자리를 보는 음택 풍수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과 달리 '감룡경·의룡경'은 도읍지나 거점 도시의 입지 선정 같은 양택 풍수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과 국토관이 진정 무엇이었는가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풍수는 크게 4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땅의 지기를 살펴 그에 맞는 용도를 결정하는 행위, 토지의 하중(荷重) 능력 비교평가, 입지에 대한 공간구조 배치, 문제 있는 땅을 고쳐 쓰는 행위 등이 그것입니다. 조선조까지만 해도 과거 시험에 의술, 복술(사주), 풍수과목이 포함돼 있었는데 현재는 의술만 과학이라고 취급을 하고 사주 명리학이나 풍수과목은 미신처럼 여겨져서 안타깝습니다."

 

    
             ■ 감룡경·의룡경=양균송 저·김두규 역주, 464쪽, 비봉출판사. 3만5천원.

김 교수는 15년 넘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풍수를 강의하며, 전국으로 답사를 다녀본 결과, 실제로는 좋은 땅보다 안 좋은 땅이 더 많았다고 했다.

"진정한 명당이란 주거, 생산, 방어공간이 조화를 이루어진 곳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완벽한 땅은 문자 그대로 유토피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땅이 안좋다고 조상탓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풍수지리의 진가는 바로 안좋은 땅을 좋게 고쳐쓰는데서 발휘됩니다."

그렇다면 풍수가 인간에게 진짜로 영향을 미치는 걸까. 그는 '명당발복설(明堂發福說)'과 '동기감응설(同氣感應說)'로 대답을 대신했다.

 "산 사람이 좋은 터에 살면 좋게 되고 죽은 사람이 좋은 터에 묻히면 후손이 번창한다는 것이 명당발복설입니다. 이 바탕에는 꼭 동기감응설이 전제가 돼야 합니다. 동기감응은 양택(집터)의 경우 주변의 기(氣)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기운이 맞아 편안함을 느낀다면 당연히 하는 일이 순조롭게 풀릴 확률이 높은 것이고, 음택(묏자리)의 경우도 조상이 편안하면 후손이 편안하고 조상이 불안하면 그 후손이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의미가 없다면 풍수설 자체가 무너진다고 할 수 있을만큼 풍수에서는 절대적 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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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김선회기자]"주식투자 실패로 자신은 물론, 가정을 잃고 절망감으로 죽음까지 선택하는 분들을 막기 위해 책을 썼습니다."

이성문(33)씨는 고등학교 졸업후 20대 중반 목돈을 통장에 계속 넣어두기보다는 주식투자를 해서 불리면 창업자금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주식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그가 처음 투자한 D회사의 주식은 유령주식 파문을 일으키면서 거래가 정지됐고 졸지에 투자자금의 3분의 1을 날리게 된다. 그는 잃어버린 돈을 하루라도 빨리 되찾고자 몸부림쳤지만 거듭된 실패로 인해 그동안 모아 놓았던 돈마저 모두 다 잃었고, 그 뒤로 적지 않은 빚도 지게 됐다.

"주식으로 돈을 다 날렸을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우선 빚을 갚기위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요. 그래도 가장 오래 몸을 담았던 일은 일명 '철가방'을 들고 뛰는 것이었죠. 식당에서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는 일은 저에게 안성맞춤이었어요. 철가방 일은 고졸이라는 낮은 학력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이었거든요."

 배달원 생활로 인해 몸은 고단했지만 이씨는 재기를 위해 칼날을 가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돈이 조금 모이자 저는 작은 규모로나마 주식시장에 도전을 했어요. 도전과 실패의 반복이었죠. 지금 헤아려보니 깡통을 무려 10번 정도는 찬 것 같아요. 서서히 몸과 마음이 지쳐갈 무렵에 드디어 한 줄기 빛이 비쳤어요. 2006년 한 모의투자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입니다. 마냥 즐거웠죠. 그러다 2007년에 출전한 실전투자대회에서는 500%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어요. 투자에 대한 성공도 중요하지만 제가 재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과 종교(기독교)의 도움이 아닐까 합니다."


이씨가 이번에 쓴 책의 전반부에서는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투자론에 해당하는 후반부에서는 상한가 매매 기법을 중심으로 재기의 투자법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주식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식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전업투자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품고 있는 간절한 소망이 무엇인지 아세요? 직장에 다니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것이에요. 일 년간의 실적을 합산해보면 전업투자자 가운데 원금손실 없이 매달 직장의 월급만큼 벌어 생활비로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전업투자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모니터 앞에서 후회와 갈등으로 깊이 고뇌하고 있어요. 직장에 다닐 때의 자기 모습을 그리워한다는 말입니다."/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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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무실로 책 두권이 배달됐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ㅋㅋㅋ

드디어 출판계가 나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책 리뷰는 다음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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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김선회기자]"시(詩)를 쓰는 작업은 저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지요."

상담 수원시박물관 사업소장의 또 다른 직함은 다름 아닌 '시인'. 그가 공직생활 중에서 틈틈이 적어 내려간 시들을 묶어 시집 '바람의 통로'를 펴냈다.

   
바람의 통로는 한 소장의 네 번째 시집이다. 지난 1993년 월간 '문예사조'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그는 1994년 첫 번째 시집 '덫의 삽화'를 시작으로 3편의 시집을 연달아 출간했었다. "이번 시집은 마지막 시집이 나온 지 11년 만에 나온 것이라 더욱 감회가 새롭네요.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월드컵도 치렀고, 대선과 총선을 비롯한 선거, 여러가지 행사 때문에 시 쓸 여유가 안 됐는데 자꾸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은 없어지는 것 같은 두려움도 들고, 그래서 다시 시를 쓰게 됐습니다."

한 소장은 이번 시집에서 우리의 전통정서인 인연과 그리움을 강조하고 현대 물질문명의 병폐를 지적하는 '사랑' '라일락 수상' '바람에게 하는 말' 등 80편의 시를 담았다.

"우리나라 시인들 중에서 김소월과 윤동주를 좋아해요. 그분들의 서정성을 많이 닮고 싶었죠. 저는 이번 시집에서 사람들이 인연을 중시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이상세계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현실은 힘들게 마련이고 피안의 세계를 동경하게 마련이거든요. 한 분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제 시를 읽고 잠시나마 위안을 가졌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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