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지상에 오르내리는 부패와 비리의 현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 '룸살롱'.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소통코드로 강준만 교수가 택한 키워드다.
1인당 최소 수십만 원이 드는 '룸살롱 접대'를 관행으로 인정하는 것은 한국의 독특한 문화다. 그렇다면 룸살롱의 시작은 언제로 봐야 할까.
강 교수는 룸살롱의 전신인 '요정'이 전성시대를 구가한 해방정국을 그 발원지로 보고, 마침내 위세가 절정에 달한 현재까지 룸살롱 발달의 과정과 변모의 순간을 생생하게 전한다.
1947년 서울에만 3천여개 이상의 요정이 있었으니, 요릿집과 기생집이 보통사람들의 화제가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요릿집과 기생집 출입은 정치 지도자들에서부터 경찰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만연된 관행이었다. 오죽하면 1946년 12월 중순 수도경찰청이 "경찰관들의 요정 출입으로 경찰 행정에 불민(不敏)한 점이 적지 않으므로 경찰의 각종 요정 출입을 일절 엄금할 것"을 지시했겠는가. 그러나 위에서부터 늘 요릿집과 기생집을 출입하는데, 그것이 근절될 리는 없었다.
■룸살롱 공화국┃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88쪽, 1만2천원.
1970년대부터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룸살롱(또는 유사 룸살롱)과 이에 따른 '호스티스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룸살롱이 아닌 업소들도 룸살롱 흉내를 내기 마련인 바, 오늘날까지도 유사 룸살롱으로 인해 룸살롱의 엄격한 정의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룸살롱 '원맨밴드' 경력 33년인 A씨에 따르면, 국내에 룸살롱이 들어선 것은 1970년대 중반이며, 1세대 룸살롱은 서울 퇴계로 주변에 모여 있었다. 이후 이태원 근처에 '길싸롱', '밤길' 같은 룸살롱이 생기기 시작했다.
강 교수는 "한국은 명실상부한 '접대 공화국'이다. 주고받는 접대 속에 인정이 싹트고 명랑사회가 구현될까? 오히려 부정부패가 꽃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는 "룸살롱의 물리적 본질은 '칸막이'이며, 칸막이는 패거리 만들기의 필수 요소로, 패거리주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이다. 그런 의미에서 룸살롱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인 셈이다"라고 밝혔다. /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